좌석 버스에서 만난, 오.빠!

 

안녕하세요. 저는 꽃다운 (?) 스물 하나 여대생입니다. 방학을 맞아 한창 정신 없이 놀고 있죠.

오늘도 1시까지 늦잠 자다가 컴퓨터 앞에 앉았네요 ㅋㅋ

저처럼 늦게까지 방에서 뒹굴며 밥만 쳐묵쳐묵 하고 계실 대딩들을 위해, 올 봄에 겪은 일 하나 써볼까 합니다 ㅋㅋㅋ

 

저는 노래 동아리를 하고 있습니다. 노래 듣는걸 좋아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아리에도 가입을 했죠. 4

월 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중간고사를 발로 그린 뒤, 5월에 있을 동아리 공연을 준비했습니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아서 주말에도 학교에 가야만 했죠. 저희 집은 분당이라,

학교에 가려면 꽤 오랜 시간 동안 좌석 버스에 앉아야만 하는데요 ㅠㅠ

매일매일이 서울 여행….퇴근시간 혹은 밤 늦은 시간에 버스 타면 완전 죽음입니다.

삼겹살 냄새며, 소주 냄새며….사람 잡아요 잡아….=_=;

 

각설하고, 문제의 그날, 저는 연습 때문에 학교에 가고 있었어요.

동아리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는데, 그 날은 합주하는 날이었죠.

지난 번 합주 때 연습이 엉망이어서, 베이스 치는 복학생 오빠가…다음 연습 때도 이따구로 나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시무시한 발언을 했…..지만 저는 그 전날 과음으로 인해 또 연습을 제대로 못했어요.

 

좀 일찍 동방에 가서 연습 좀 해야겠다 생각하고, 아주 아주 빨리 집에서 나왔습니다.

근데 이건 멍미…고속도로에서 꼼짝도 않는 나의 버스…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교통사고가 터진거였죠…..’

아!놔!! 할 수 없지, 그냥 연습할 노래나 무한 반복해서 듣고 있자….’라고 생각하고 엠피쓰리를 꺼냈습니다.

근데. 근데 근데!! 저 바보인가요…가방 안에 엠피쓰리만 있고 이어폰은 어디갔니?

....아….이제 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둥둥…베이스 오빠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마음 같아서는 버스에서 뛰어내려, 초속 200km의 속력으로 집에 가고 싶었지만,

고속도로에서 어떻게 내리겠어요 ㅠㅜ 정말 똥줄 탔습니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요?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오늘 연습할 노래가 제 귓가에 울려 퍼지는게 아니겠어요?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말이죠.

마치 집에 놔둔 이어폰이 내 귓구멍 속에 들어있는 것 마냥… ‘아…드디어 환청까지 들리는구나…정신 차리자! 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는데,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하게 들리는 거예요.

저는 옆을 힐끔 쳐다봤어요. 어떤 무섭게 생긴 남자분이 이어폰을 꽂고 자고 있었죠.

슬금슬금 그 사람 얼굴에 귀를 들이댔습니다. 아!!!!! 맞았어요….그 노래, 바로 그 노래였어요 ㅠㅜ

어느 새 저는 그 사람 얼굴에서 3mm 떨어진 상태로 노래를 듣고 있었죠….그..근데…..잠시 후, 다른 노래로 바뀌더군요.

 

그 순간 저는 이성을 잃었고, 그 사람 손에 들려있던 엠피쓰리를 뺏어서 이전 곡 재생을 눌렀어요.

당연히 잠에서 깬 그 분, ‘뭐 이런 믿힌게 다 있냐’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시더군요…아 진짜 민망 ㅠㅜ

그치만 오늘 보고 다시 안 볼 이 분보다 우리 베이스 오빠가 더 무섭거든요…완전 무서웠그등요…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용기는 냈지만, 이 분 얼굴이 워낙 무섭게 생겼기 때문에, 개미만한 목소리로

‘저…저…제가 지금 나오는 이 노래를 꼭 백 번 들어야 되는데요, 제가 이어폰을 안들고와서요 ㅠㅜ

괜찮으시다면, 노래 좀 같이 들으면 안될까요?...근데 이 곡만 무한 반복으로요 ㅠㅜ’라고 말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용기인지…목숨을 걸었죠 ㅋㅋ 그 분 약 10초 동안 눈 동그랗게 뜨고 아무 말도 못하더이다…

그리고 잠시 후!!! 평생 웃음이라고는 듣도 보도 못했을 것 같은 그 분 얼굴에서 저는 미소를 봤어요.

깔깔거리며 웃더니 이어폰 한 쪽을 주더라구요. 그렇게 마치 연인처럼 이어폰 한 쪽 씩 나란히 귀에 꽂고,

한 시간 동안 버스 안에 갇혀있었어요. 내릴 때가 거의 다 되서, 이어폰을 뺐는데,

이 분이 갑자기 자기 이어폰도 빼더니 엠피쓰리를 끄고, 저한테 건네주는 거예요.

많이 급해 보이는데, 오늘 가져갔다가 다음에 돌려달라는 거였죠. 아니…그래요.

제가 좀 세상의 어두움이란 모를 만큼 착하게 생기긴 했어요. 그래도, 어떻게 그걸 받아요. 양심이 있지…’

아니,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엠피쓰리를 빌려주세요’ 라고 했더니, 그 분이 글쎄 절 안대요 ㅋㅋㅋㅋㅋ

알고보니까 우리 아파트 단지 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분이더라구요.

 

그 분 얼굴 상상한 분이 있다면 눈치 채셨겠지만, 예상대로 새벽부터 아침까지…..(ㅋㅋㅋ) 일하는 분이었죠.

그래도 내가 이거 안주고 편의점도 안가면 어떡할거냐고 하니까, 괜찮대요. 나를 믿는대요 ㅋㅋㅋ

그래서 저는 얼떨결에 엠피쓰리를 들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보니까 필립스 Gogear였어요.

저는 필립스에서 엠피쓰리도 나오는지 첨 알았다죠….어쨌든, 덕분에 무사히 연습을 마쳤어요.

무서운 선배한테 혼나지도 않았고, 봄공연도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끝냈죠 ㅋ

 

저 요즘, 그 편의점만 갑니다. ‘혹시?’하는 분들을 위해 미리 말씀드리는데, 그 분과 사귀고 그런건 아니구요.

아주 아주 베프가 되었다죠. ㅋㅋ 그 날 연습 끝나고 필립스 mp3 안에 담긴 노래를 보니,

저랑 음악 듣는 취향이 완죤 비슷하더라구요.

그래서 심심하면, 깊은 새벽 쓸쓸히 일할 오라버니를 위해, 말동무 해주러 놀러갑니다. (사실 그래서 오늘도 늦잠 잔거구요ㅋㅋ)

뭐, 그 분이 좋다는거 아니예요 ㅋㅋ 고마우니까, 그리고 방학이니까요 ^ ^;;;

 

 
^^

by Jung | 2009/07/08 18:15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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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MessageOnly at 2009/07/08 19:17
우와..정말 멋진 일이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Commented by K-ON at 2009/07/08 21:33
청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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